본문 바로가기

소설

이별의 의미(サヨナラの意味) 단편소설 번역

프롤로그-청(靑)

어느 날, 분명히 당신은 울고 있었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제국행 기차가 지나가는 날이었다.
나와 당신이 처음으로 말을 나눴던 날이었다.

당신은 기차가 가장 잘 보이는, 늪지대에 떠있는 섬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어둡고 흐릿한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너머로 갈 사람이겠지, 그런 확실한 예감에 감싸여서 말을 걸지 않고 그저 가만히, 차가운 비에 떠는 당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롤로그-적(赤)

나의 몸에는 가시가 있다.

그것은 종종 내 인생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소외 받고, 멸시받고, 저주받는 존재.
저항하려 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세상은 모두 다수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 반찬을 정할 때도. 학생 회장을 정할 때도.
국가를 움직이는 정치인을 정할 때도. 법을 정할 때도.

소수는 필요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된다. 
처음부터 모두 다수파였다는 것이 되고 상식과 가치관이 통일된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다수파로 받아 들여지는 것은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견이나 가치관을 마음 속 깊이 눌러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으면 되니까. 
나는 결코 다수파가 되지 않겠지, 나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길은 있다.

거기다 2개나.

하나는 아무도 나라는 소수의 존재를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의식」을 치르는 것.

「나나미. 올해는 네가 해라」

저녁 시간. 

아버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했다.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인 아스카가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혼자서 식사하는 것을 귀찮아하기에 내가 입에 옮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질 않는 아스카.
지금은 그녀가 좋아하는 죽을 입에 옮겨주어도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 한 채 입을 열지 않는다.

아스카의 걱정을 덜기 위해 나는 입가에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제대로 된 미소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티 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순간적으로 솟구친 감정이 미소를 짓게 하지 않았다.

공포라는 생생한 감정이.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 올해는 내 차례일 것이라고.

나는 이제「졸업」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면 나아가지 못한다.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망설이던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별하는 것이 무서운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의식」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소수로 태어난 내가 다수에 받아 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단순히 인간이 되기 위해서.

분명 굳었을 웃는 얼굴로 아스카의 입에 죽을 옮겼지만, 그녀는 내 손등을 응시한 채 먹지 않았다.

나는 가시가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철이 들었을 무렵 아버지에게 그렇게 들었다.
선천적으로 소수인 것.
소외 받고, 멸시받고, 저주받는 존재인 것.
주변 모두가 나와 똑같았기에 나는 자신이 그런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몸에는 가시가 있다.

손등, 손가락 사이, 손가락 관절에 5cm에서 10cm 정도의 가늘고 딱딱한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극인(棘人)」이라 불리는 압도적으로 소수파에 속하는 신체적 특징을 가진 일족이다.
옛날에는 일본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작은 마을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염병이나 기근, 자연재해로 나라가 혼란할 때마다 극인은 그 원인의 발단이라 간주되어 박해 받고 학살되어 왔기 때문이다.

「가시인간(しじん)」은 죽음을 가져오는「죽은 사람(死人)(しじん)」이라고.

「가시인간(とげびと)」은 말살되어야 할「저주받은 사람(咎人)(とがびと)」이라고.

이기적인 억지.
하지만 그것은 다수에 의해 올바른 가치관이 되어 마녀 사냥과 같이 일본 각지에서 극인들이 학살 되고 없어졌다.
역사에, 극인들은 없었던 것이 되었다.
하나의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
그 마을이 바로 지금도 우리 극인 일족이 살고 있는 땅이다.

가시는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가시는 체내에 들어가 있다. 평범한 인간과 전혀 다를 것 없이 생활할 수 있다.

가시가 나오는 것은 감정이 고조할 때다.

예를 들어 화가 날 때. 

가시는 즉시 손을 뒤덮고 노골적으로 공격 의지를 나타낸다. 그 손을 누군가에게 휘두른다면 그것은 큰 상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두려울 때. 
가시는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방어 의지를 나타낸다. 누군가 가까이 오려고 하면 그 손은 선혈에 물들 것이다.

우리는 이 손으로, 이 가시로, 마을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거리를 두어왔다. 
그래도 박해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을 사람들이 극인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극인들도 마을 사람을 습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오랜 세월에 걸쳐 증명해 왔다.

그것이「의식」이며,「극도식(棘刀式)」이라 불리는 전통의식이다.

올해는 내가 극인 대표――.

「이야, 나나세가 남자 역인가~」

「굉장하잖아. 올해는 내가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냐아냐아냐아냐」

평소와 같이 창문에 기대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옆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극도식」의 남자 역에 뽑힌 인간소녀와 그 친구들이다.
어딘가 태평하고 맥빠진 이야기 소리에 마음이 시큰해지고 손등이 쑤신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극도식을 향한 연습이 시작된다.
특별히 어렵진 않다.
남자역에 뽑힌 인간 대표인 소녀가 극인 대표인 내 손의 가시를 단도로 자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 달동안 연습을 하는 것은 약간의 연출을 하여 극도식을 보러 오는 마을사람들을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극도식은 마을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극인은 무해하다고, 해칠 생각이 없다고, 인간도 쉽게 가시를 자를 수 있다고 이해 받기 위한 의식이니까.
극인은 계속 이 마을사람의 대표자에게 가시가 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조용히 살아왔다.

「지금부터 니시노 씨와 나나미가 할 의식은 과거에 이 마을에서 싸우던 우리 극인들과 인간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맹세한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거실에서 남자역인 소녀와 마주 앉고 아버지에게서 간결하게 극도식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니시노 씨라고 불린 그녀. 아까 친구들이 나나세라고 불렀던가.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당황해서 도망치듯 눈을 피한다.
둥근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애가 남자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잔을 부딪히고 둘이서 맹세한다.

「그럼, 악수를」

아버지의 말에 재촉돼 오른손을 내민다.
니시노 씨는 내 오른손을 응시한 채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마치 얼마나 가까워져야 가시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나나미!」

정말로 가시가 나올 것 같았던 나는 손을 쥐고 방을 뛰쳐 나갔다.

「언니?」

아버지의 호통과 복도에서 엇갈린 아스카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볼 수는 없었다.

「뭐!? 그대로 도망친 거야!?」

마이와 사유리가 놀라움에 목소리를 높였다.

「응. 무서워하고 있었으니까」

「그랬구나. 어쩔 수 없었네」

하고 마이가 말했다.

「그렇다구. 나나밍 또 꽁해 있었지? 웃는 얼굴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밝게 말했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사유리.

방을 뛰쳐나간 나는 친구인 마이와 사유리에게 아까 일어났던 일을 얘기했다.
두 사람은 나와 같은 극인으로, 동갑이다. 계속 같은 고민과 문제를 안고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언제나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아스카를 비롯한 연하인 극인 소녀들에게는 「고산케(御三家)」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니, 나나미가 그렇게 사유리 같아진다면 무서운데」

「그런가아? 나나밍의 웃는 얼굴, 엄청 귀엽다구?」

「고마워. 두사람은 연습 어땠어?」

두 사람도 극도식에 조연으로 참여하기 위해 오늘부터 같이 조연인 인간소녀들과 합동으로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쪽도 오늘은 상견례 뿐이었어. 역시 엄청 경계하는 느낌」

그렇게 말하는 마이. 똑똑하고 언제나 사물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그녀는 나의 좋은 이해자이다.

「방긋방긋 웃고 있으면 상대방도 웃는다구. 그러지 않는 사람은, 사유링고 펀치!」

그렇게 말하는 사유리.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사유리지만 사실은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서툴고 상처 받기 쉽다. 그만큼 인간소녀들과 처음으로 만난 오늘은 심하게 상처받고 온 것이 아닌가 걱정 했지만 그런 것 같진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나나밍도 펀치해. 자, 나나밍 펀치!」

내 손을 잡고 펀치를 하려하는 사유리를 웃는 얼굴로 제압했다.

「니시노 씨에게 화가 난 게 아니야」

「그래? 그래도 가시가 나올 뻔 했던 거 아냐?」

「응. 기대(きたい)…했던 걸까」

「헤에. 그런가」

마이는 전부 이해한 듯이 기쁘게 웃었다.

「응? 기체(きたい)? 산소 같은?」

사유리는 나와 마이를 번갈아 보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 나는 니시노 씨가 무서워했던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나와의 악수를 주저한 것은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어도 극인과 인간은 생활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전원이 첫 대면. 이해가 부족한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그저 내가 니시노 씨에게 너무 기대하고 말았다. 
극도식에서 내 가시를 자르는 니시노 씨. 내가 무해한 인간임을 증명해주는 그녀라면, 극인 이외의 첫 번째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현실은 가시 없는 손에 닿는 것조차 무서워하고, 가시가 없는 손을 내밀어도 친구가 될 수 없는,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었던 자신에게 화가 나서 무심코 가시가 튀어나올 것 같았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시가 나왔다면, 주저하던 니시노 씨가 책임을 지게 된다. 그녀가 날 화나게 했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방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된 극도식 연습은 전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 극인은 빨강, 인간은 파란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간단한 춤을 선보이며, 나는 무대 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얼굴 앞에 양 손을 겹친다.
손가락은 교차하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뻗은 가시만을 교차시켜, 그 가시를 니시노 씨가 단도로 단숨에 자른다는 흐름이다.

하지만 니시노 씨는 칼을 내리치지 못하고 있다.

실수해서 내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무서운 것인가.
내가 무서운 것인가.
내가 가시를 잘리고 인간 무리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로, 시간만이 지나고 있었다.

덧붙여서 내 가시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실패 이유는 아니다. 
연습에서도 제대로 가시는 나온다. 
물론 누군가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다.

무섭기 때문이다.

가시를 베어본 경험도, 칼을 내리친 경험도 없는데다 상대는 지금까지 단도를 만져본 적도 없는 니시노 씨.  
무서운 것이 당연하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몸은 정직하고, 연습할 때마다 가시가 자주 나온다.

아버지의 눈초리도 나날로 나빠져 갔다. 
그날 내가 도망친 것이 니시노 씨에게 공포심을 심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을 책망했다.

연습을 보러왔던 아스카가 구경하러 와서 동영상을 찍고 있던 인간 고등학교 방송부의 아이와 말다툼을 하던 중, 말리려고 한 니시노 씨에 가시를 찔러버린 사건도 일어났다. 
내가 즉시 말려야 했지만 매일같은 연습으로 지쳐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스카는 인간이 우리 극인을 흥미본위로 촬영하고 있었던 것이 참을 수 없었겠지만, 그렇다해도 니시노 씨가 아니라 내가 말리러 가야 했다.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올해 극도식은 중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비가 와서 더욱 공기가 무거워지자 연습은 중단되었다.
마이와 사유리와 함께 돌아가려고 하니, 니시노 씨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슬쩍 그녀의 위에서 반창고를 떨어뜨리고 떠나려고 했다.

「저, 저기……」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와 대화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저기, 이거, 고마워」

「……응」

「항상 무슨 책을 읽는 거야?」

슬쩍 보자,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이거, 내가 항상 읽는 책……인데, …괜찮으면 바꾸지 않을래?」

내민 책은 파란색 표지. 인간이 읽는 책이다. 

우리 극인이 읽는 책은 붉은 표지로, 그러한 점에서도 명확하게 극인과 인간이 구별되지만 그녀는 그저 극인이 읽는 붉은 표지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그녀는 우리 극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가 인간의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의 더 극인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나도 인간이 읽는 책에 조금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웃는 얼굴로「극인과 고양이」라는 책을 건넸다.

빨리 집에 가서 읽기 시작한 나는 극도식 연습이 잘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책은 옛날에 일본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현대에는 멸종한 극인의 특징을 전하는 이야기로, 잘못된 내용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심각하게 왜곡된 내용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극인은 모든 재앙을 가져오고 다가오는 사람을 분별없이 가시로 상처 입히는 존재라는. 
인간에게 원한을 가진 고양이가 둔갑한 요괴라는 설명까지 적혀 있었다. 
일찍이 일본 전역에서 극인이 학살된 무렵에 퍼졌던 일화를 정리한 내용이었다. 
당시 다수파가 만들어 낸 잘못된 상식.

이런 책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니.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이 책을 니시노 씨가 읽었다면 무서워서 칼을 내리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녀는 우리에 대해서 몰랐던 게 아니다. 몰라도 되는 왜곡된 것까지 지나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 한다. 
그런 생각에 잠기면서 나도 모르게 거실에서 몰두하여 읽고 있으니, 아버지가 돌아와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을 발견하자마자 순식간에 빼앗았다.

「왜 인간의 책을 읽고 있는 것이냐?」

침묵하자, 아버지는 거듭 말을 이었다.

「이런 책을 읽으니까 안 되는 것이지 않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 않느냐!」

「읽지 않으니까 안 되는 거 아니야? 좀 더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거 아냐?」

「시끄럽다! 일족의 관례를 어기는 것이냐!」

내 반박에 격분한 아버지는 책을 집어 던졌다.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자 답답해진 나는 거실을 나가려 했으나, 팔을 붙들렸다.
필사적으로 뿌리치고 차가운 비가 내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기를, 비를, 규칙을, 관습을, 과거의 일들을, 모든 것을 전부 떨쳐 버리듯이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나는 또다시 언제나의 그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제국행 기차가 지나가는 습지대의 섬에.
오늘은 마침 그 날이었다.

잠시 멈춰 있으니,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리고 점차 바퀴와 선로의 이음매가 일정한 리듬으로 연주하는 굉음이 다가왔다.
비인지 다른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뺨을 타고 흐르는 가운데, 나의 동경만을 태우고 달려가는 기차를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연습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채 극도식 날이 찾아왔다.

붉은 의상을 입고 미세한 칼집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을 낸 종이로 얼굴을 덮었다. 연습 때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많은 관객이 있는 실전에 극인 대표는 얼굴을 가려야 한다.
의식의 신비성과 신성함을 위해서 연출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배려하는 것이다.

가시를 베이는 것은 무섭다.

종이로 얼굴을 가리면 그 순간의 표정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끝난다.

붉은 색과 푸른 색 의상을 입은 많은 조연 역을 뒤에 두고 간소한 춤을 선보인 후 무대의 중앙에 무릎을 꿇고 가시 덮인 손을 눈 앞에 겹쳤다.
무대 아래, 관객석 맨 앞줄에서 푸른 옷에 단도를 쥔 니시노 씨가 무대로 올라온다.

얼굴을 가린 종이의 미세한 틈으로 보인 표정은 묘하게 침착해 있어서 평소의 니시노 씨의 불안에 떨던 표정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니시노 씨가 나에게 가까워진다. 단도가 달빛을 반사하여 반짝 빛났다.

오늘이야말로 벤다.

망설이던 나도 각오한 채 눈을 감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

슉.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전신에 힘이 들어가 몸이 굳었다.
하지만 손에는 어떠한 감각도 전해지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칼끝은 내 가시 직전에서 멈춰 있었다.

'역시 베지 않았네' 하고 생각한 찰나.

카랑.

니시노 씨가 단도를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종이를 조심스레 벗겼다.

트인 시야에 비친 것은, 무척이나 맑고 상쾌한 웃음빛이었다.

니시노 씨는 빠르게 종이비행기를 접어 무대 아래의 객석을 향해 날렸다.
비행기는 객석을 지나고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일직선으로 공기를 가르는 그 모습은 마치 제국행 기차와도 같았다.

「가자」

가시 투성이인 내 손을 주저없이 잡은 웃는 얼굴의 니시노 씨는 나를 당겨서 무대 아래로 이끌어주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자고.
가시가 있어도, 소수파라도,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어떠한 나라도 분명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다수파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관객석에서 웃으며 손을 잡은 채 마주보는 나와 니시노 씨를 따르는 것처럼 조연 역 모두가 손을 맞잡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웃으며 춤을 추거나, 뛰거나, 우리들은 계속 친구였던 것처럼 하나로 모이고 웃는 얼굴로 천진난만하게 떠들었다.

극인과 인간이 정말로 함께 살아갈 것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저기……나, 나나……미, 씨」

들뜬 축제 분위기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니시노 씨가 말을 걸어왔다.

「나나미라 불러도 돼. 근데 왜?」

「응. 나나미, 제국에 가고 싶어?」

제국.
그곳에 간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제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인종의 벽 없이 함께 살아간다고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그곳이 극인이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제국에 가는 날을 꿈꿨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릴 용기가 없었던 나는, 이별을 망설인 나는, 제국행 기차를 섬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으응.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래」

그런가.
니시노 씨도 나와 교환한 책을 정말로 읽었구나.
그때 교환한 책「극인과 인간」중에 내가 꿈꿨던 제국의 기술이 있다.
인간의 키보다 훨씬 높은 제국타워의 앞에서 손과 손을 맞잡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의 그림과 함께.

니시노 씨는, 내 진정한 소원을 이해했구나.

에필로그-적(赤)

극도식이 끝난 후 우리들의 생활은 달라졌다.
극인의 마을과 인간의 마을을 분리하던 울타리가 없어지고 교류하는 기회가 늘기 시작했다.

극도식에 참석했던 우리는 모두 누가 극인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를 정도로 친해졌다.
극인도 인간도 아닌, 친구.
동료가 된 것이다.
다수파가 되는 것을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컴플렉스가 된 가시는 아직 신체에 남아 있지만 우리는 더이상 그것을 끙끙 앓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소수파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마음을 뒤덮고 있던 가시는 더이상 없는 것이다.

그래, 하나도 없다…… 그럴 텐데…….

드러난 내 마음에 새로운 가시가 박혔다.

어째서냐면, 나는 제국행 기차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가 있는 편안한 마을을 버리고, 버릴 수 없었던 동경하던 땅에.

그렇게 결의했을 때, 내 마음에 가시가 박혀버렸다.

그것은 동료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가시.
모두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죄어오고 안타까워진다.

하지만 이 가시는 약하고 용기 없는 나를 밀어준다.

그런 「부드러운 가시」를 마음에 계속 남겨둔 채로, 나는 새로운 다수파의 땅으로 향한다.

에필로그-청(青)

지금, 분명히 당신은 웃고 있었다.

차가운 비에 떠는 당신의 등을 지켜보던 그 날부터 언젠가 이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미소가 한낱 꿈으로 바뀌어버리는 날의 일을.

하지만 어제도 나나미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모두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오늘도 평소처럼 창가에 걸터앉아서 나를 미소로 맞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웠던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몇번이나 손을 잡아도 나나미의 가시는 한번도 나를 찌르지 않았지만, 나나미가 없어진 사실이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당신을 만나서 끌어 안고,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계속 함께 있자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나나미가 확실히 결정하도록 하게 만든 것.
이렇게 용기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나나미와, 우리가 동료였다는 것.

무척 슬프지만 그만큼 기쁘다.

그런 부드러운 가시가 마음에 박혀있는 한, 분명 우리는 평생 나나미를 떠올릴 것이다.

이별을 통과점으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강해져.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날 때 또 곧바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내일부터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바람을 갈아입고, 다음 한 걸음을 내딛자.




※이 글은 공식적인 내용이 아니라 팬픽임을 알립니다.


원본 출처

http://denshinovel.com/?p=6344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0) 2016.07.22
프롤로그  (0) 2016.07.22